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2문
Q. What do we pray for in the second petition? A. In the second petition, (which is, Thy kingdom come,) we pray, That Satan's kingdom may be destroyed; and that the kingdom of grace may be advanced, ourselves and others brought into it, and kept in it; and that the kingdom of glory may be hastened.
문. 두 번째 기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답.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두 번째 기도에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사탄의 나라가 멸망하고 은혜의 나라가 흥왕하여 우리와 타인이 그 안으로 들어가 거기 머물게 되는 것과, 영광의 나라가 속히 임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ㆍ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ㆍ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시 68:1).
ㆍ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시 68:18).
ㆍ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0-11).
ㆍ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롬 10:1).
ㆍ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살후 3:1).
ㆍ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ㆍ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ㆍ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정치를 '인간들이 함께 모여 행동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종종 권력의 찬탈과 지배의 도구로 전락한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읊조리는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단순한 종교적 염원을 넘어, 기존의 뒤틀린 세계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통치 체제를 요청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선언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 즉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는 영토적 개념보다는 '통치권' 혹은 '지배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누구의 의지가 이 세계와 내 삶을 이끌어가는가에 대한 주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소요리문답은 이 기도의 첫 번째 목표로 '사탄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꼽는다. 현대인들에게 사탄은 유치한 호러 영화의 소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사탄의 나라는 '자아의 비대화'와 '구조적 악'이 결합된 제국이다.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논리, 물질적 풍요가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다는 배금주의, 그리고 끝없는 중독과 불안으로 인간을 노예화하는 모든 시스템이 곧 사탄의 통치 영역이다. 이 제국의 특징은 '분열'과 '참소'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만들고,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의 쳇바퀴에 가두는 이 내면의 독재자가 무너질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서막이 열린다.
이어지는 간구는 '은혜의 나라가 흥왕하는 것'이다. 이는 '공로주의'(Meritocracy)의 해체를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철저히 준 대로 받는 보상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은혜의 나라'(Regnum Gratiae)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전혀 다른 문법으로 작동한다. 은혜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성과로 증명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존재'임을 수용하는 정서적 혁명이다. 이 은혜가 우리 내면에 스며들고 사회적 관계망으로 퍼져나갈 때, 경쟁은 연대로, 시기는 축복으로 치환된다. 우리가 '타인이 그 안으로 들어가길' 기도하는 것은 이 매혹적인 은혜의 시스템을 전 세계적인 표준 운영 체제(OS)로 업그레이드해달라는 요청과 같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또한 조직의 핵심 가치를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리더의 독단이 지배하는 조직은 사탄의 나라를 닮아가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존엄이 존중받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조직은 은혜의 나라를 투영한다. 기독교적 기업가 정신은 자신의 사업장을 하나님의 통치가 가시화되는 실험실로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원리인 정의와 평화, 희락이 일터의 공기 속에 흐르게 하는 것이 기도의 실천적 목표가 된다.
마지막으로 소요리문답은 '영광의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이미(Already)' 시작되었으나 '아직(Not Yet)' 완성되지 않은 긴장 상태를 끝내달라는 종말론적 갈망이다. '영광의 나라'(Regnum Gloriae)는 모든 눈물이 닦이고, 깨어진 모든 관계가 복구되며, 죽음조차 생명에 삼켜지는 최종적인 승리의 지점이다. 이 소망은 현실의 고난을 견디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현재의 불합리와 고통이 역사의 끝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오늘을 대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영광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현재의 자원을 미래의 영광을 위해 투자하는 '영적 자산가'가 된다.
이렇듯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우리 삶의 주인을 바꾸는 항복 선언이자, 동시에 가장 높은 차원의 명예 회복 선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나라에서 부역하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식하는 대사(Ambassador)로 부름받았다. 기도는 골방의 한숨을 넘어, 타락한 세상을 향한 거룩한 저항이 된다. 사탄의 제국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낮은 자들을 향한 은혜의 강물이 흐를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통치 수단임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오늘 자신이 선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길 갈망하라.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